영정사진의 검은 리본 제거
영정사진 위에 두르는 검은 리본(리본 띠)은
전통 예법이 아니며
일제강점기 시절 도입되었거나
현대 장례식장에서 정착된 관습입니다.
전통 상례에는 영정 자체가 없었고, 혼백(魂帛)·명정(銘旌)으로 고인을 모셨습니다.
전통 예법에서 영정은 고인의 모습을 담은 정중한 대상이므로, 사진을 가리거나 어둡게 만드는 검은 리본을 두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통에 가깝습니다.
바른 장례문화
(주)하늘자리가 집전하는 장례절차는 전통 예법(가례 · 주자가례 · 사례편람)과 현대 장례 문화의 장점을 채택하여
전통 예법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으로 합리화된 절차를 제공합니다.
영정사진 위에 두르는 검은 리본(리본 띠)은
전통 예법이 아니며
일제강점기 시절 도입되었거나
현대 장례식장에서 정착된 관습입니다.
전통 상례에는 영정 자체가 없었고, 혼백(魂帛)·명정(銘旌)으로 고인을 모셨습니다.
전통 예법에서 영정은 고인의 모습을 담은 정중한 대상이므로, 사진을 가리거나 어둡게 만드는 검은 리본을 두르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통에 가깝습니다.
관행적으로 남자는 팔에 완장
여자는 머리에 핀을 꽂는 방식이 보편적입니다.
성별에 따른 상주표식의 차이는 남녀유별 문화 및 일제강점기 완장 제도의 영향을 받은 관행입니다.
현대 장례에서는 남녀 차별적 요소를 줄이고, “고인의 직계 자녀(유가족)는 모두 동등한 상주”라는 의미를 담아 성별 구분 없이 동일한 상주리본(로제트)을 가슴에 달아 드립니다.
건전가정의례준칙도 남녀 구분을 두지 않으며, 예법상으로 합리적인 현대적 방식입니다.
“ㅇㅇㅇ 신위(神位)”라 표기하는 지방은 고인의 혼이 계신 자리를 뜻하며, 기제사 등 조상에게 제를 지낼 때 사용하는 것입니다.
장례 기간 중 영정 앞에 지방을 올리는 행위는 일제시대인 1934년 「의례준칙」에 명시되어 시작됐고, 이는 우리의 내세관(효사상)을 거부하고 죽음조차 일본식으로 바꾸려는 문화말살의 일환이었습니다.
장례 기간 중에는 신주가 없으므로 혼백(魂帛)을 모시고, 명정처럼 고인의 이름을 씁니다. 혼백 상자는 상식·전을 올릴 때 열고 평소에는 닫아 두는 것이 「사례편람」의 규정입니다.
상식(차례)이나 전(奠)을 올릴 때 열어 고인을 맞이하는 것은, 혼백을 함부로 노출하지 않고 정성을 다함을 의미합니다.
전통 장례에서는 아직 살아계신다는 의미로 제사가 아닌 전(奠)을 올리고, 지방(神位)은 고인을 장지에 모신 뒤 집으로 돌아올 때 제주반혼제에서 써서 삼우제·49재 등 탈상 시점까지 사용합니다.
기독교·천주교 장례에서도 고인의 직함과 이름이 적힌 명패를 모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팔에 두르는 완장은 1934년 일제 「의례준칙」에서 온 것입니다.
건전가정의례준칙은 상장을 왼쪽 가슴에 다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탈상까지 착용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나비상장(胸章)이나 머리핀을 다는 것은 전통 상복(굴건제복)의 일부분인 상장으로나마 상복을 입어 예를 갖춘다는 의미입니다.
전통 장례 풍습에서는 장사(매장) 후 혼백을 묘소 옆 깨끗한 곳에 묻고(埋魂帛), 그 자리에서 신주를 써 집으로 모셔와 우제·졸곡을 지냅니다.
신주 대신 지방을 쓰고 탈상 후 지방을 소각하는 것은 현대에서 표준을 대체하는 방식입니다.
화장 및 장지 하관이 끝난 후 제주반혼제를 지내면서 명패 대신 지방을 써서 집(또는 위패를 모시는 곳)으로 모셔가는 것은, 비로소 고인이 조상신·영령으로 자리잡았음을 격식 있게 예우하는 절차입니다.
(주)하늘자리는 장례의전절차를 진행함에 일제강점기나 그릇된 관행으로 남은 잘못된 요소를 배제하고, 한민족이 가지는 전통 예법의 취지를 현대 장례 환경에 맞춰 불편함이 없이 제공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본 내용은 「가례」·「주자가례」·「사례편람」의 상례 규정과 현행 「건전가정의례준칙」, 그리고 1934년 조선총독부 「의례준칙」의 도입 경위를 바탕으로 (주)하늘자리가 정리한 것입니다. 바른 장례문화를 위한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종교·가문·지역의 예법에 따라 세부 절차는 상담을 통해 조정해 드립니다.
상담 및 문의
하늘자리가 집전하는 장례절차를 상담을 통해 자세히 안내드립니다.